후보자 선거벽보 (2) 제3ㆍ4대 정ㆍ부통령선거 신익희, 장면 선거벽보
|19/09/25
제3ㆍ4대 정ㆍ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신익히’와 부통령 후보자 ‘장면’의 선거벽보로 크기는 가로 38.8, 세로 54.7 cm 이고 빨간색과 파란색을 주로 사용한 컬러 포스터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민주당 선전벽보에 등장한 “못 살겠다, 갈아보자” 라는 선거구호이다. 이것은 선거구호의 시초로 선전벽보에 정당, 이름, 사진만 인쇄되어 있던 이전 선거와 달리 후보자의 지향을 한 마디로 압축한 선거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구호는 당시 이승만의 장기집권과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ㆍ정신적으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던 국민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대한민국 선거사에 길이 남을 구호가 되었다. 이에 여당인 자유당에서는 “가러봤자 더 못 산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구호로 맞서기도 했다.
이 선거에서는 민주당과 자유당의 치열한 정당대결이 펼쳐졌으나, 신익희 후보가 유세 도중 서거하면서 이승만이 총 투표수의 55.7%를 득표해 3선에 성공했다. 놀랍게도 무효표와 기권표가 26.4%를 차지했는데, 신익희 후보에 대한 추모와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만이 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부통령선거에서는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를 제치고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당선되었다.
신익희(申翼熙, 1894~1956)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등을 역임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제헌국회에 진출하여 초대 국회의장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으로 활동했다. 1955년 장면, 조병옥 등과 우리나라 야당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을 창당했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1956년 5월 2일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그의 유세에는 무수한 인파가 모여 그의 인기를 실증하기도 했다.
장면(張勉, 1899~1966)은 해방 후 정계에 입문하여 1948년 서울 종로 을구에서 제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야당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1960년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입후보했으며, 4ㆍ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제5대 민의원을 거쳐 제2공화국 국무총리로 선출되었다.
※ 참고문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 2016.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 2018.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