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으로 부활한 대통령 직선제
|26/09/14
■ 국민이 요구한 대통령 직선제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는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다시 부활한 뒤 치러진 첫 대통령선거였다. 19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된 이후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간접선거로 선출하는 제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에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고,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선거 이후 그 요구는 더욱 커졌다.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은 ‘1천만 개헌서명운동’ 등을 전개하며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 4·13 호헌조치와 6월 민주항쟁
그러나 1987년 4월 13일 정부는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기존 헌법에 따라 대통령선거를 실시하겠다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직선제 개헌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깊어졌다. 결국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참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 국민투표로 확정된 대통령 직선제
6월 민주항쟁 이후 정치권은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여야 합의를 거쳐 대통령 직선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이 마련되었고,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를 통해 제9차 헌법개정이 확정되었다. 이 개헌으로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가 다시 마련되었으며, 대통령 5년 단임제도 함께 도입되었다.
■ 치열한 경쟁 속에서 치러진 선거
새로운 헌법에 따라 제13대 대통령선거는 1987년 12월 16일 실시되었다. 선거에는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 등이 출마하였다.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함께 민주화를 요구해 왔지만 후보 단일화에는 실패하였다. 네 후보는 각각 다른 선거 전략과 공약을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6년 만에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선거였던 만큼 선거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매우 높았다.
선거운동에서는 선전벽보와 신문광고뿐 아니라 방송연설과 TV·라디오를 통한 대담·토론 등이 활용되었다. 특히 유신헌법 이후 폐지되었던 연설회가 다시 시행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연설회가 열려 선거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하지만 선거운동이 치열해진 만큼 불법 선거운동과 폭력사태도 발생했다. 불법 선전물과 유인물이 배포되고 유언비어와 흑색선전, 금품과 향응 제공 등의 사례도 나타났다. 후보자들의 지역별 지지 경쟁은 지역감정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87년 12월 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는 전체 선거인 2,587만 3,624명 가운데 2,306만 6,419명이 투표하여 89.2%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36.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지역별로는 후보자마다 강한 지지 지역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지역별 투표 성향은 이후 우리나라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나타나는 중요한 모습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국민의 선택으로 다시 열린 직선제의 시대
제13대 대통령선거는 결과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의미는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의 부활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결과였으며, 국민이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현할 수 있는 길을 다시 열었다.
또한 직선제 개헌은 선거의 규칙을 권력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요구와 여야 합의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1987년의 변화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고,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87년 체제’의 시작이 되었다.
1987년 12월, 국민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자신의 한 표로 대통령을 선택했다. 대통령 직선제의 부활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민주주의와 공정한 선거를 바랐던 국민들의 참여와 요구가 만들어낸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