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6년 10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선거 포스터

    |26/09/01


  •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근대적 민주선거는 1948년 5‧10 총선거였다. 다만, 그전에도 선거라는 것이 있기는 했다.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실시되었던 도의회 또는 부의회 의원선거가 있었으나, 이는 국민의 1% 정도만 경험했던 극히 제한적인 선거였다. 이것보다는 조금 더 많은 국민이 경험했던 선거가 1945년 광복 이후에 한 차례 있었다. 바로 1946년 10월에 실시되었던 남조선과도입법의원선거였다. 이 선거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구성하기 위해 민선의원 45명을 선출하는 간접선거였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이 통치하던 남한에서 일종의 자치의회로 관선 45명, 민선 45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간접선거로 치러지면서 선거권자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관련 박물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2025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개구입 사업을 통해 귀중한 자료를 입수하였다. 바로 ‘입법기관대표의원선거’라는 제목의 안내 포스터이다. 이 포스터의 내용을 살펴보자.

    포스터의 크기는 38.5cm × 53.0cm이며, 붉은 색과 검은 색 2도로 인쇄되었다. 중앙에 투표지를 든 손을 도드라지게 강조하였고, 그 아래에 ‘경상북도’라고 해당 지역을 표기하였다. 포스터의 내용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선거권자는 성별의 제한은 두지 않았으나, ‘세대주’라는 독특한 자격요건을 볼 수 있다. 당시에 한 가정을 대표하는 사람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던 시대적 한계와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우측 하단 피선거권자의 조건에는 ‘단 일정시대에 도부장, 도의원 및 부의원을 지낸 자 또는 일본인과 합작하여 조선인들을 불리하게 한 자를 제외함’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를 통해 해방 직후 우리 민족의 단호한 친일 청산 의지와 민족정기 확립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고위 관직을 지냈거나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자들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민족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고 선거조항에 못 박은 것이다.
    좌측 상단의 선거기일을 보면 지금처럼 하루만에 투표가 끝나지 않고 날짜가 층층이 나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선거는 유권자가 의원을 직접 뽑는 방식이 아닌 마을(구)대표를 먼저 뽑고, 그 대표들이 다시 상위 대표를 뽑아 최종적으로 도 대표의원을 선출하는 단계별 간접선거였음을 알 수 있다. 즉 경상북도 전역에서 최종 도 대표의원을 선출하기까지 무려 9일 간의 대장정이 필요했던 셈이다.
    비록 오늘날과 같은 완벽한 형태의 보통·직접 선거는 아니었지만, 내 손으로 민족의 법을 만들 입법기구의 대표를 뽑겠다는 주권자로서의 염원은 그 어느때보다 강렬했을 것이다. 이 포스터는 경상북도에서 입법의원선거에 참여할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 요건, 행정 단위별 선거 일정, 시간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다만, 아쉽게도 이전 소장자가 이 귀중한 자료의 훼손을 방지하고자 라미넥스 코팅(통칭 책받침 코팅)을 하여 본래의 질감을 느낄 수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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