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등록신청서류(1) 제2대 대통령선거 이승만 후보자등록신청서
|19/01/04
우리나라는 1948년 5월 10일 첫 선거 이후 한 번도 끊기지 않고 20번의 국회의원선거를 치렀으며, 대통령선거는 직선제와 간선제를 오가며 변화를 겪었지만 87년 민주화 이후 3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공고화했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제도화된 절차이다.
선거에서 후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법이 정한 서류를 갖추어 대통령선거는 선거일 전 24일,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는 선거일 전 20일부터 이틀간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자로 등록한다. 후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당 또는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아야 하며 기탁금을 납부해야 한다. 또한 선거운동 기간 전이라도 일부 선거운동을 하여 자신을 알릴 수 있도록 대통령선거 선거일 전 240일, 국회의원선거는 선거일 전 120일부터 예비후보자제도를 두고 있다.
■ 제2대 대통령선거 이승만 후보 등록신청서류와 추천장
1952년 7월 4일 발췌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가 채택되고 7월 18일 「대통령ㆍ부통령 선거법」이 제정되면서 제2대 대통령선거부터는 출마하기 위해 선거인 500명 이상의 추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타인을 대통령 후보자로 추천할 경우에는 선거인 추천 이외에 본인의 승낙서도 첨부해야 했다.
직선제 개헌을 통해 제2대 대통령선거가 공고되자 뜻밖에도 이승만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재선을 노리고 개헌을 밀어붙였다는 세간의 평을 의식한 전략적 행동이었다. 그러자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 지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승만의 재출마를 촉구하는 탄원 성명을 속속 발표했고 대중집회를 동원했다.
당시 후보자등록 기간은 7월 19일부터 26일까지였는데, 자유당은 잘못된 계산으로 마감일을 25일로 알고 있었다. 이에 자유당은 마감시간이 촉박하다고 느껴 마침내 7월 24일 오후 4시 30분 이승만 대통령의 승낙서를 받지도 않고 부통령 후보 이범석과 함께 중앙선거위원회에 후보자등록을 했다.
[자료1-1] 제2대 대통령선거 이승만 후보자의 추천등록신청서이다. 대통령후보자추천등록신청서(大統領候補者推薦登錄申請書)는 접은 면은 가로 15.5 * 25.1 cm, 펼친 면은 31 * 25.1 cm 이다. 고서의 판식과 같이 한 장의 종이의 사변에 여백을 준 가운데 양쪽으로 대칭되는 2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계선으로 행간을 구분했다. 수기로 작성한 문서이며 오른쪽 하단에 중앙선거위원회 접수인(단기 4285. 4. 24.)이 찍혀 있다. 자료 상태는 종이의 퇴색이 심한 편이며 오른쪽 모서리 부분의 훼손이 있다. 대통령후보자추천등록신청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후보자 이승만
2. 본적 황해도 평산군 능내동
3. 주소 부산시 부민동 3가 23번지
4. 직업 제1대 대통령
5. 성별 남
6. 생년월일 단기 4208년 3월 26일(만 77세)
7. 소속정당단체 자유당
우자를 단기 4285년 8월 5일 시행하는 「대통령」선거에 후보자로 추천하고저 대통령ㆍ부통령선거법시행령 제18조의 규정에 의한 증명서와 본인의 승낙서를 첨부하여 그 등록을 신청함
단기 4285년 7월 24일. 우후보자를 추천하는 자. 대표자 채규항
중앙선거위원회 귀중
주소로 적힌 부산시 부민동은 당시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가 위치한 곳이다. 부산은 6ㆍ25전쟁 기간 중 피란 수도이자 국정운영의 중심이었으며, 이후 임시 관저는 1984년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개관했다. 6ㆍ25전쟁 중 이승만은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고 여야의 개헌안을 발췌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발췌개헌). 직선제로 치러진 제2대 대통령선거에는 이승만, 조봉암, 이시영, 신흥우가 출마했고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추천자들을 대표한 채규항(1897~1954)은 조선공산당과 신간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서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자유당 조직부장을 지냈다. 제2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이승만 후보의 선거사무장이었다.
자유당에서 제출한 후보자등록서류는 미비했지만, 중앙선거위원회는 추후 승낙서를 첨부해 보완한다는 조건으로 등록신청서를 수리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마감일인 26일 오후 5시 민의를 따르겠다며 불출마 의사를 번복하고 후보자 등록 승낙서를 제출했다.
[자료 1-2]이 바로 이승만 후보의 승낙서이다. 가로 18.9 * 세로 25 cm이며, 종이의 퇴색이 심하고 좌우변의 훼손이 있다. “단기 4285년 8월 5일 시행하는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선거에 본인을 후보자로 추천하였음에 대하야 자에 차를 승낙함”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고, 이승만의 도장이 찍혀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중앙선거위원회 접수인(4285. 7. 26. 17시 20분)이 있다.
후보자등록서류에는 후보자 추천장이 첨부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승만 후보의 추천장은 현존하지 않는다. 1956년 제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이승만 후보의 추천장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현재 소장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자료2-1] 1956년 대통령후보자등록서류철(이승만)로 이승만을 대통령 후보자로 추천하는 사람들의 추천장을 제본하여 1권으로 편철, 소장되어 있다. [자료2-2] 대통령후보자추천장(大統領候補者推薦狀)의 서식은 후보자와 추천인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다. 이 추천장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살고 있는 유공환이라는 사람의 추천장이다. 추천월일(4.1.) 및 추천인의 직업(상업), 소속정당단체(자유), 성별(남), 생년월일(4234년 4월 1일)이 기재되어 있다. 이승만 후보자의 본적, 주소, 직업, 생년월일, 성별, 소속정당단체가 적혀 있으며 그를 단기 4289년 5월 25일 시행하는 대통령선거에 후보자로 추천한다는 내용이다.
특이한 점은 이승만의 본적이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1번지로 되어 있다.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본적이 황해도 평산군으로 되어 있으나, 한국전쟁 이후 반공 분위기를 고려하여 본적을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생년월일에서 ′개국 484년′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는데 조선왕조가 개국한 1392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1894년 갑오개혁이 이루어지면서 ′개국′이라는 연호가 처음 사용되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단군기원을 연호로 법제화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후보자 추천장에 ′개국′이라는 연호를 부활시켰다.
※ 참고문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이야기」. 2018. pp.38~39.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선거전」. 2014. p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