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 집권의 경연장으로

    |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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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8월 5일 제2대 대통령 및 제3대 부통령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이에 앞서 7월 4일 대통령과 부통령을 직접 선거로 선출하자는 당시 국무총리 장택상의 조정안인 발췌개헌안(拔萃改憲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7월 7일 제1차 개정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초대 정·부통령선거는 제헌국회에 의한 간접선거로 치러졌지만, 제2·3대 정·부통령선거는 국민이 직접 선거에 참여해 정·부통령을 뽑는 직접선거 방식을 채택하며 제도적인 변화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배경을 살펴보면, 선거를 집권을 위한 도구이자 형식적인 절차로 이용했던 당시 집권층의 씁쓸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5·10 총선에 불참했던 여러 정치세력들이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들이 국회에 입성하면서 이승만 정권의 실정을 비판했습니다. 6·25 전쟁 중 야당인 민주국민당은 내각제 개헌을 추진했고 이에 맞서 정부 여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했습니다. 양측의 갈등이 심해지자 이승만은 야당을 탄압하여 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여야의 안을 발췌하여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 및 국무원불신임제를 도입하는 제1차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제2대 대통령선거는 간접선거에 자신이 없었던 이승만이 발췌개헌을 통해 상대 후보가 선거를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직접선거제 개헌부터 선거일까지 1개월이라는 빠른 시간 안에 선거를 마무리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선거를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자료2] 1952년 5월 26일 국회의원들이 탑승한 통근버스가 통째로 헌병대로 끌려 가버린 장면. 버스가 헌병대에 도착하자 한 장교가 올라타 몇몇 의원의 이름을 부르더니 간첩단 사건으로 체포하였습니다. 살벌한 공안 분위기가 조성됐고, 체포를 모면한 국회의원들은 종적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자료3] 1952년에 제작된 자유당 당보. 자유당의 당수 이승만과 부당수 이범석의 사진이 있으며 헌법 개정 주요 조항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범석은 부통령 후보로 자유당에서 공천을 받았지만 이승만의 지지를 받지 못해 낙선했죠. 무소속으로 출마한 함태영이 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자료4] 제2대 대통령선거 이승만 후보 등록신청서류. 직선제 개헌을 통해 대통령선거가 공고되자 뜻밖에도 이승만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자유당과 정부가 동원한 대중집회와 이승만의 재출마를 탄원하는 서명운동 등이 벌어진 이후 이승만은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고 대통령 후보 등록을 했습니다.
    제2대 대통령선거에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을 비롯해, 무소속의 조봉암, 이시영, 신흥우 4명이 출마했고 이승만이 74.6% 득표율로 당선되었습니다.

    ※ 참고문헌
    대한민국역사박물관ㆍ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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