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지분류기 도입(2002) : 신속·정확·효율의 세 박자
|18/11/05
■ 밤샘 개표
개표는 국민들의 소중한 권리 행사를 마무리 짓는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국민들이 개표에 관심이 높은 만큼 정확성과 투명성 향상은 선거관리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자 오랜 과제였습니다. 한때 개표의 모든 과정은 수작업으로만 이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개표 시간이 오래 걸려 개표사무원의 피로가 쌓이고 정확도와 신속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1948년 5ㆍ10 총선거는 개표에 무려 3일이나 걸렸습니다. 5월 10일 오후 7시 투표가 종료되자 전국에 마련된 개표장에 속속 도착한 투표함은 밤샘 개표 끝에 12일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완료되었습니다. 그사이 서울 마포구의 어느 동회장은 밤샘 개표에 매달리다가 졸도하였는데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제2대 국회의원선거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월 30일 오후 5시에 투표가 종료된 뒤 6월 1일 오후 8시가 돼서야 전북 김제를 마지막으로 투표를 완료했습니다.
지금이야 투표가 끝나고 그 다음날이면 개표가 완료되지만 밤샘 개표는 그때부터 계속 변하지 않고 이어져온 장면입니다. 밤샘 개표는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국민이나 직접 개표 업무에 종사하는 개표사무원 모두에게 힘든 일입니다. 일선 공무원들과 교사들이 대거 개표에 동원되었는데 밤샘 개표 후 곧바로 정상 근무와 수업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고 수업에 지장이 많아 개표에 차출되는 것을 다분히 꺼려했습니다.
■ 신속 정확한 투표지분류기 도입
1991년 지방선거가 부활한 이래 몇 개의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상황이 많아졌습니다. 지방선거에다가 교육감선거, 교육의원선거, 재ㆍ보궐선거까지 겹치면 8~9개의 선거를 한꺼번에 치러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늘어난 선거만큼이나 투표지 물량도 배로 늘어났습니다. 덩달아 개표 시간도 늘어나고 밤샘 개표는 사고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신속하고 정확한 개표를 위해 개표사무원들을 도와줄 수 있는 보조적인 기계장치 개발에 나섰습니다. 2001년 금융권에서 스캐너를 이용해 수표를 분류하는 기술을 응용하여 투표지를 분류하는 기계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두 개 업체에 투표지분류기 개발을 의뢰했습니다. 두 업체의 시험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2002년 1월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지분류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투표지분류기는 OCR(광학식 문자 판독기) 방식을 적용해 투표지에 찍힌 기표 형태와 위치를 인식합니다. 정확하게 기표된 투표지는 후보자별로 분류하고, 무효 또는 부정확하게 기표된 투표지는 별도로 분류해 개표사무원이 최종적으로 유ㆍ무효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투표지분류기를 이용하면 1대당 1분에 220~250장, 시간당 1만3천여 매의 투표지를 자동 분류할 수 있습니다.
투표지분류기를 도입하면서 투표용지도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기존 투표용지와 달리 고속도로 통행권이나 지하철 승차권처럼 기계 안에서 걸리지 않게 더욱 빳빳하게 제작됐고, 종이 먼지를 방지하고자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했습니다. 특히 정전기 방지용 특수약품을 사용하였고, 고급 침엽수 펄프를 사용하는 등 분류기의 전자장치 오류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제3회 지방선거를 통해 실전 배치된 투표지분류기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지분류기를 2002년 치를 제16대 대통령선거에 전면 도입하기로 목표를 잡았습니다. 이에 앞서 정확성을 시험해 보고자 대통령선거 6개월 전 치러질 제3회 지방선거의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에 부분적으로 투표지분류기를 사용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선거에서 투표지분류기 650대를 제작해 전국 236곳에서 활용했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8월 8일 실시된 13곳의 재ㆍ보궐선거 개표에도 투표지분류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는 개표사무원 숫자를 1만 명 이상 감소시켜 총 10억여 원의 예산이 절감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재ㆍ보궐선거에서는 평균 1시간 39분 만에 개표를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낮은 투표율을 감안한다 해도 수작업에 의한 개표 때보다 시간을 절반 정도 단축한 것이어서 당장 앞으로 다가온 12월 대통령선거 개표 준비에 희소식을 안겨 주었습니다.
마침내 제16대 대통령선거 전국 242개 개표소에서 총 956대의 투표지분류기가 사용되었습니다. 개표사무원이 이전 보다 1만 4천여 명 줄었고 개표 시간도 직전 대통령선거의 평균 7시간 30분에서 평균 3시간 49분으로 4시간 가까이 크게 단축되었습니다.
■ 논란이 입증시킨 투표지분류기의 정확성
제3회 지방선거가 종료된 후 모두 세 군데의 선거에서 투표지분류기 사용과 관련한 선거소청과 선거소송이 제기됐습니다. 법원은 문제가 됐던 선거구 각각의 투표지를 모두 재검표하도록 했고, 그 결과 당초 개표 결과와 한 표의 오차도 보이지 않아 오히려 투표지분류기의 정확성을 다시 한 번 공식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도 투표지분류기의 정확성에 관한 시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2002년 투표지분류기 도입 이후 소송을 통해 모두 25차례 재검표가 실시됐습니다. 물론 단 한 차례도 선거 결과가 바뀐 적은 없었습니다. 특히 제16대 대통령선거의 선거무효 소송에서 선거사상 처음으로 전국 80곳 투표지에 대한 재검표가 실시했지만 개표 오류율은 0.008%에 불과했습니다. 오류로 번복된 표 또한 투표지분류기의 문제가 아니라 유ㆍ무효표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재검표는 오히려 투표지분류기의 정확성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지분류기를 더욱 발전시켜 여러 장점을 극대화하고 각종 의혹들은 말끔히 씻어내며 선진화된 선거환경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글쓴이 : 영월군선거관리위원회 주임 심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