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뀔 운명을 예감한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8/07/09
■ 위기에 몰린 여당
2006년 5월 23일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대통령만 빼고 전국적으로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한나라당이 독점하는 상황은 막아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지원유세까지 중단하며 긴급회의를 열어 채택한 호소문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여당에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며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제4회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었습니다.
선거기간이 아직 적지 않게 남은 시점이었지만 열린우리당의 호소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2년 전인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탄핵의 역풍을 맞았던 한나라당이 천막으로 당사를 옮기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읍소했던 그때의 상황이 이제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영남권을 중심으로 121석을 확보하며 기사회생했습니다. 그때 152석의 거대여당이 되었던 열린우리당이 이렇게 지방선거 참패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격세지감입니다. 과연 제4회 지방선거를 맞이한 열린우리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선거 초반의 참패 전망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 지방권력 심판론 VS 현정권 심판론
정치권은 이번 선거를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의 분수령으로 여기고 사활을 건 총력전을 다짐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지방정권 심판’의 기치 속에 외부 인물 영입에 힘을 쏟았습니다. 당 지지도가 한나라당에 10% 포인트 이상 뒤지는 상황에서 인물로 승부를 보기로 하고 서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경기도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후보로 영입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이들을 기반으로 수도권에서 바람을 일으켜 지방까지 휘몰아친다는 전략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중앙정권 심판’의 구호 아래 노무현 정부 중간평가를 벼르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정권 심판, 내년은 정권 교체”를 구호로 내걸고 황우석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청한 데 이어 정부·여당의 각종 비리의혹을 제기하며 ‘당 대 당의 대결’로 몰아간다는 전략이었습니다. 여기에 열세로 꼽히던 서울시장선거에 오세훈 전 의원이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출마하기로 선언하면서 한나라당의 만면에 회색이 돌았습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도 세력 확대를 위한 발판 마련에 절치부심했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은 거점지역인 호남과 충청권 사수에 초점을 맞추었고 민주노동당은 ‘울산·경남 벨트’를 벗어나 전국의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에 두루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 달라진 선거제도, 확대된 참정권
선거를 앞두고 선거권자 연령이 만 19세로 낮아졌습니다. 역대 선거권 연령은 1948년 5·10총선거에서 만 21세 이상이었다가 1960년 만 20세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8월 선거법을 개정해 만 19세 이상으로 낮추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처음 적용되었습니다. 또 선거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습니다. 투표할 수 있는 외국인은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영주 체류 자격 취득 후 3년이 경과한 만 19세 이상 외국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참정권이 확대되어 60여만 명의 새내기 유권자들과 6,700명에 달하는 외국인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투표하게 된 인천지역 화교들은 “1882년 제물포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이래 120여년만의 최대 경사”라며 축하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또 거소에 상관없이 선거일에 투표소에 가서 투표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나 부재자신고를 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여 참정권 행사를 보장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독도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된 것도 이때였습니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위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국관리사무소에, 금강산 근로자들을 위해 강원도 고성 남북출입국사무소에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했습니다. 월드컵 국가대표 축구팀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마련된 부재자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를 통해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도 정당공천이 가능해졌습니다. 아울러 일부 지역에서 특정정당이 기초의회를 장악하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1개 선거구에서 2~4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무보수 명예직이었던 지방의회의원의 유급제를 시행한 것도 이때입니다.
선거사상 최초로 유권자들과 후보자간의 공식적인 공약 약속인 메니페스토(manifesto) 정책선거운동이 실시되었습니다. 메니페스토란 선거공약에 기간, 목표, 공정, 재원 나아가 우선순위 등 구체적인 공약 실천 방안을 유권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동안 연고주의, 지역주의로 점철된 우리 선거문화를 선진적으로 개혁하고자 시민단체와 선거관리위원회가 힘을 합쳐 만들었습니다. 매니페스토운동은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지양하고 유권자의 정책에 관한 관심을 높여 정책선거로 발돋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여당, 대선 전망을 밝힌 한나라당
초반의 참패 전망은 선거전 막바지에 다다르자 낭패감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지원유세 도중 피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젠 경합지역도 어렵게 됐다며 선거는 이미 끝났다고 열린우리당은 절망적으로 되뇌였습니다. 피습 사건 이후 여당 운동원들의 활동도 눈에 띄게 위축되었습니다. 선거 초반 한나라당의 공천헌금 파문은 완전히 묻혀버렸습니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이 시·도지사부터 기초단체장까지 사실상 지방선거를 석권했습니다. 호남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압승 또는 우세승을 거둬 ‘싹쓸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한나라당은 16개 시·도지사 중 서울시장을 비롯한 12곳을 석권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전북 한 곳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광주와 전남을 가져갔습니다. 제주도는 무소속 후보자가 한나라당 후보자를 간발의 차로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230개 기초단체장선거에서는 한나라당 155곳, 민주당 20곳, 열린우리당 19곳 등의 당선자를 배출했습니다.
비단 당선자 숫자뿐만 아니라 정당별 득표율에서도 열린우리당은 참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한나라당 후보자들은 영남지역뿐 아니라 통상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수도권에서도 열린우리당 후보자들보다 보통 2~3배 가량 높은 득표율을 보였습니다. 사상 유례없는 1, 2위 정당간 득표율 차이는 정부·여당에 등돌린 민심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었습니다.
선거결과를 확인한 한나라당은 2002년을 떠올리며 표정관리에 들어갔고, 두 곳을 건진 민주당은 만족스럽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단 한곳의 시·도지사도 배출하지 못한 민주노동당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본거지인 충남도지사선거에서도 패배한 국민중심당은 존립을 걱정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이 사퇴하고 김근태 전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 체제를 가동하게 되었습니다.
<글쓴이 : 영월군선거관리위원회 회계주임 심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