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열기 속에 첫 40%대 투표율을 기록한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8/05/30
■ 월드컵으로 바뀔 뻔한 선거일
2002년 제3회 지방선거는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처음 맞는 전국 규모 선거였습니다. 또 선거기간이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기간과 겹쳐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던 선거였습니다. 월드컵 개막전이 5월 31일인데, 선거일은 6월 13일이니 후보자등록이 막 끝나고 선거운동을 시작하려 할 때 월드컵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으로 개최하게 된 우리나라는 온 신경이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에 쏠렸고, 심지어 지방선거일을 바꿔야 되는 게 아니냐는 요구가 공공연하게 나왔습니다.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던 정몽준 의원은 2000년부터 지방선거를 월드컵 전후로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선거일을 1~2개월 앞당기는 조기실시 방안과 2002년 12월의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두 가지 방안을 저울질했습니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월드컵을 응원하는 많은 국민들도 선거일이 조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지방선거를 5월 9일로 앞당겨 실시하기로 당론을 확정했습니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도 처음에는 5월 중순으로 앞당기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고건 서울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힌 새천년민주당은 예정대로 6월 13일 실시하기로 당론을 정했습니다. 결국 여야는 협상에 협상을 거듭한 끝에 예정대로 실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선거일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꾼다면 법 규정이 있으나마나한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길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자 하는 바람이 만든 해프닝이었습니다.
■ 대통령선거의 전초전
이번 선거는 선거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에서 치러졌습니다. 이전에도 여소야대 국회가 몇 번 있었지만, 선거를 앞두고는 어느새 여대야소로 개편되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달랐던 거죠. 공동여당을 구성하던 DJP연합이 해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연합이 야당을 선언하고 독자노선을 가기로 했습니다.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 두 야당의 파상 공세를 막아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두고 있었습니다. 주요 정당들은 이미 대통령 후보자를 확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대통령선거의 예비선거로서 성격을 갖는 말 그대로 전초전이었습니다. 각 당 대통령후보가 지방선거를 이끄는 대통령선거 대리전 같았습니다. 심지어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는 “부산, 경남, 울산 세 곳의 광역단체장선거 중 한 곳 이상 이기지 못하면 후보로서 재신임을 받겠다”며 지방선거에서 배수진을 칠 정도였습니다.
선거전략 또한 지방선거와는 무관한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대선정국의 기선을 잡기 위한 전략이 펼쳐졌습니다. 새천년민주당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켜 대통령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측근 비리를 집중 부각시켜 현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교체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뚜렷한 대선후보가 없었던 자유민주연합은 철저하게 지역선거임을 강조하며 텃밭인 충청권에 모든 전력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지방선거를 계기로 제4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 충격적인 40%대 투표율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 압승, 새천년민주당 참패, 자유민주연합 몰락, 민주노동당 약진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나라당은 시·도지사 11곳과 기초자치단체장과 시·도의회 60% 이상을 석권했습니다. 새천년민주당은 호남과 제주에서만 승리했습니다. 자유민주연합은 충청권의 맹주 자리를 한나라당에 내주며 당세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몰렸습니다. 놀랍게도 제3당의 지위는 민주노동당에 돌아갔습니다. 이번 선거에 새롭게 도입된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덕분이었습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큰 충격을 안겨준 선거였지만, 전체적인 선거 참여는 예상대로 저조했습니다. 한·일월드컵 열기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4강에 오를 만큼 선전하면서 더더욱 선거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이때까지 전국 단위 선거 최저투표율인 48.9%를 기록했습니다. 6년 뒤 제18대 국회의원선거가 46.1%로 최저투표율 기록을 갈아치우지만, 처음으로 40%대라는 절반도 되지 않는 투표율을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월드컵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정치권의 계속된 비리사건으로 정치적 냉소와 국민들의 불신이 큰 원인이었습니다. 여기에 지방선거인지 대통령선거인지 모를 선거정국은 지방자치에 대한 혼란과 지방정치만의 고유한 성격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선거제도를 정비하고 혁신적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풀뿌리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특히 이 선거에서 투표지분류기를 제작해 전국 236곳에서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개표사무원 숫자를 1만 명 이상 감소시켜 총 10억여 원의 예산이 절감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선거가 종료된 후 모두 3곳의 선거에서 투표지분류기 사용과 관련한 선거소청과 선거소송이 제기됐지만, 모두 수작업으로 재검한 결과 당초 개표 결과와 한 표의 오차도 보이지 않아 오히려 투표지분류기의 정확성을 다시 한 번 공식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글쓴이 : 영월군선거관리위원회 주임 심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