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이름을 직접 써서 투표했던 1960년 서울시장선거
|18/02/13
■ 1960년 선거의 해
1960년은 ‘선거의 해’였습니다 봄부터 대통령선거와 부통령선거가 치러져 3·15 부정선거 규탄으로 전국이 들썩거리더니 여름에는 공화국이 바뀌고 민의원의원선거와 참의원의원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접선거로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12월에는 시·도의회의원선거와 시·읍·면의회의원선거, 시·읍·면장선거, 서울시장과 도지사선거가 연이어 치러졌습니다. 무려 9개 선거가 실시된 것이죠.
선거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민의원과 참의원 양원으로 국회를 구성했고, 처음으로 서울시장을 주민의 손으로 직접 뽑았습니다. 또 하나 우리 선거사에 전무후무하게 남아 있는 투표방법인 자서식(自書式) 투표가 처음으로 시도되기도 했습니다. 자서식 투표란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한문이나 한글로 투표용지에 직접 쓰는 방식입니다. 이름을 기입한다고 해서 기명식 투표라고도 합니다. 현재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 필리핀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하랴
1960년 12월 29일 서울특별시장선거에서 자서식 투표가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글 모르는 까막눈은 참정권을 박탈당하기에 당연히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죠. 그럼에도 유독 서울시장선거에서만 자서식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우리나라 정치 중심 서울이라는 자긍심과 우리도 문명국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습니다. 4·19혁명을 일으킨 시민의식에 고무되어서일까요. 13년간 붓대롱으로 투표해 왔다는 것은 문명국가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며, 서울시민들은 자서식 투표를 할 정도 수준에 올라왔다고 자신한 것입니다. 필리핀에서도 하는 걸 우리라고 왜 못하겠느냐고 역설했습니다.
5%, 많으면 7% 정도 기권자가 생기겠지만, 그 정도는 동그라미 투표에서도 나오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치부했습니다. 투표하고 싶으면 후보 이름 석 자 정도는 쉽게 외울 수 있지 않느냐고 면박 주는 식이었습니다. 오히려 서울시장선거에서 선도적으로 도입해 다른 모든 선거로 확대해 나가자는 장밋빛 청사진을 그렸습니다.
■ 매서운 한파에 ‘개점휴업’한 투표소
교육당국에서 조사해 보았더니 서울시 문맹 유권자가 10%인 11만 명에 달했고, 이들에게 후보자 이름이라도 가르치려면 2,400반으로 편성해 1억1천6백만 환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방 3칸짜리 단독주택 한 채가 50만 환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교육당국도, 시당국도 손을 놓았고, 그렇게 선거일을 맞았습니다.
12월 29일 영하 12.7도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습니다. 투표소는 한산했습니다. 투표하는 유권자보다 투표사무원과 참관인이 더 많을 지경이었죠. 해가 중천에 떠 날이 좀 풀리자 투표하러 온 사람들은 자서식 투표에 당황하며 ‘어디에다 동그라미를 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표소에 들어갔다가도 누가 나왔는지 이름을 까먹었다며 다시 나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서울시장선거 투표율은 36.4%를 기록했습니다.
■ 천태만상 무효표
투표가 끝나고 개함하며 쏟아져 나온 무효표는 차라리 넌센스에 가까웠습니다. 후보자 이름을 쓰고 정성껏 동그라미를 치거나 격려와 당부의 말을 함께 적은 무효표는 애교에 가까웠습니다. 김상돈이라 쓰고 싶었는데 잘 생각나지 않았는지 ‘김장돈, 김상도, 김삼, 김도’라고 쓴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써가지고 온 종이를 풀로 붙이거나 지장, 도장을 찍은 무효표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아예 자기 이름을 쓰거나 아무 이름이나 생각나는 대로 쓰기도 했습니다. 난데없이 장경근이라고 쓴 무효표도 있었는데, 3·15부정선거와 관련되어 일본으로 밀항해 한창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이름이었습니다.
“국민이야 죽던 말던 너희들은 싸움만하느냐”며 정치권을 욕하거나 조롱하는 문구도 많았습니다. “장기영 당선되면 한턱내시오”라고 써 개표사무원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특정 후보가 찍힌 무더기표가 나와 말썽을 빚었는데, 이번에는 무더기 무효표가 나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누가 일부러 무효표를 만들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 실패로 끝난 실험
전체 시·도지사선거 투표율은 38.8%였습니다. 가장 낮은 곳은 경남도지사선거 31.6%였습니다. 자서식을 도입하지 않은 다른 도지사선거 투표율도 낮았으니 자서식이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투표율이 모두 낮은 이유는 정치에 대한 냉소와 연이은 선거에 대한 피로감, 지방선거에 대한 낮은 관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렇게 투표율이 낮다보니 선거가 끝나자마자 재선거 요구와 지방선거 무용론이 대두했습니다.
서울시장선거에서 무효표는 10% 정도 나왔습니다. 다른 선거에서 대략 4~5% 수준이었으니 자서식으로 배가 넘는 무효표가 나온 셈이었죠. 선거 이후 자서식 투표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실험은 실패로 끝난 것이죠. 유권자와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도입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씁쓸한 교훈을 남긴 채.
(글쓴이 : 선거기록보존소 전문경력관 최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