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직접선거의 시작

    |23/08/22



  • 1948년 제헌국회는 간접선거로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하였다. 제헌국회가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제2대 국회가 구성되어 중도파를 비롯해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제도권에 들어오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독주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국회는 이승만 정권을 견제할 입법 조치들을 통과시켰고, 그때마다 번번이 이승만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에 맞섰다. 여기에 거창 양민학살 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의 실정에 대해 국회가 앞장서 진상조사에 나서면서 대통령과 국회의 긴장관계는 더욱 심화되었다.
    당시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국회의 간접선거로 선출하였기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의 재선은 불투명해졌다. 국회에서는 아예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추진하였다. 이에 맞서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을 추진하였다.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하는 발췌개헌안이 통과되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다. 정부는 우리나라 최초 대통령 직접선거일을 1952년 8월 5일로 공고하였다. 선거운동 기간은 8일이었는데, 전시 중인데다가 선거 기간 또한 짧아서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자료1]은 제2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이승만 후보의 선전물이다. 2022년 기록물 공개 구입사업을 통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수집한 자료로 가로 54.6㎝*세로 77.7㎝로 현 대통령선거 선거벽보 규격인 가로52㎝*세로76㎝와 비슷한 크기이다. 이 선전물은 전면을 응시하고 있는 이승만 후보의 흉상 사진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사진 하단에는 다음과 같이 국민회에서 작성한 선전문구가 기입되어 있다.

    차기 대통령에 이승만 박사를
    이승만 박사는 한국이 가진 세계적 위대한 정치가요, 조국독립과 민족발전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신 혁명가로서 빈부와 귀천, 남녀와 지방의 차별없는 평등사회를 건설하며 동등권리를 실현하는 민주이념을 체득하신 삼천만의 국부이시니 한국이 당면한 공산침략을 격멸하여 국토를 통일하고 민생을 제도하며 민심을 안정시켜 민족만대의 복리를 누릴 수 있는 기초는 오직 이 대통령의 재선으로만 확립될수 있다.
    - 국민회

    [자료2]는 이 자료에 사용된 사진으로 원래 두루마기 고름과 양팔이 보이는 상반신 사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양복을 입고 활동하던 이승만 후보가 한복차림을 하고 있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같은 선거의 선거벽보인 [자료3]에서는 양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사용한 반면 이 선전물에서는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사용하였는데, 위 사진은 피켓, 엽서, 전단지, 초대 대통령 취임우표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에 사용되었다.
    [자료1]을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과 동정 부위에 덧붙였음을 알 수 있는 경계선이 보이는데, 원본 사진에서 얼굴과 목 부위를 잘라내어 붙인 뒤 두루마기 동정과 어깨선을 그려 넣어 까맣게 채색한 것으로 보인다. 뒷 배경 또한 검정색으로 채색되어 전체적으로는 흑백의 단조로운 모노톤이며, 얼굴 주위에 하이라이트를 주어 인물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다.

    이 자료는 이전 소유자가 4등분으로 접어서 보관하여서인지 접힌 자국에 마모와 부식이 진행되었으며 오른쪽 가로선은 살짝 찢어져있는 상태이다. 4면 모퉁이가 모두 마모되어 있는 상태이며 우측 상단과 좌측 하단은 접혀져 있다. 흑백 인쇄물로 왼쪽 상단 부분에 인쇄가 지워진 부분이 하얗게 보이며 이승만 후보의 좌측 턱부분에도 하얗게 지워진 부분이 보인다.

  • 다음글 투표 과정 학습필름
  • 이전글 1948년 5·10총선거 후보자 추천 벽보

[13809] 경기도 과천시 홍촌말로 44 대표전화 : 02-50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