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이야기

  •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참의원의원 선거

    |23/07/18


  • ■ 제2공화국의 출범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부정선거에 피로감을 느낀 시민들은 더 이상 분노를 참지 않았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이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총궐기에 나섰고, 이 시위는 전국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4·19 혁명으로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과 함께 제1공화국이 막을 내렸습니다. 6월 15일 허정 외무장관의 과도내각 체제에서 마련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국회를 통과하며 헌정사상 유일한 의원내각제인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습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양원을 구성한 선거
    제5대 국회의원선거는 1960년 7월 29일에 동시에 치러진 참의원과 민의원의원선거입니다. 양원제를 채택한 개헌안에 따라 국회는 「국회의원선거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는 이전의 「참의원의원선거법」과 「민의원의원선거법」을 폐지하고 상원 격인 참의원과 하원 격인 민의원 양원을 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의원의원과 민의원의원은 둘 다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였는데, 특히 처음으로 치러진 참의원의원선거 방식이 조금 독특했습니다. 기존의 소선거구제로 이루어지던 민의원의원선거와는 달리 서울시와 도 단위를 선거구로 각 2~3명까지 선출하는 대선거구제가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투표용지에 1명만 기표하는 단기명 투표가 아닌 선거구 의원 정수의 1/2까지 기표할 수 있는 제한적 연기명 투표방식을 도입하였습니다.
    참의원의원은 제5회 국회의 상원으로 임기는 6년, 민의원의원은 하원으로 임기는 4년이었으며 참의원의 경우 3년마다 정수의 2분의 1을 다시 선출하도록 하였습니다. 의원 정수의 경우 참의원 의석수가 민의원 의석수의 4분의 1을 넘기지 않도록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피선거권의 경우 민의원이 만 25세이상, 참의원이 30세 이상이었습니다.

    3·15 부정선거 이후 선거제도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먼저 선거 연령은 만 21세에서 만 20세로 낮아졌는데, 이후 2005년 만 19세로 개정하기 전까지 40여년간 유지되었습니다. 더불어 후보자로 등록하기 위해 첨부해야 했던 후보자 추천장 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이는 후보자 등록을 방해하는데 악용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투표 시간을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기존보다 1시간 단축하였으며, 대리투표 방지를 위해 투표참관인은 후보자 1명마다 4명으로 강화하여 2인씩 교대로 참관하게 하였습니다. 투표소 내 사고가 발생할 때는 촬영도 허용하였으며,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기입하였습니다. 투표함을 1투표구당 2개로 제한하였으며, 처음으로 부재자 우편투표 제도도 도입하는 등 투표제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제5대 국회의원선거는 제2공화국 헌법에 따라 중앙선거위원회가 헌법기관으로 격상되어 처음으로 관리한 공직선거였습니다.

    ■ 민주당의 압승과 내각책임제의 출범
    1960년 7월 29일 실시된 제5대 총선거에서 투표율 84.3%를 기록하였는데, 참의원의원 58명과 민의원의원 233명이 선출되어 같은 해 8월 8일부터 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대 참의원 의장은 백낙준 의원, 부의장에는 소선규 의원이 선출되었으며, 민의원 의장에는 곽상훈 의원, 부의장에는 이영준·서민호 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의정 사상 최초의 양원을 구성한 선거로 이번 선거는 4·19 혁명의 여파로 민주당의 압승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같은 해 8월 참의원과 민의원 합동회의에서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국무총리가 선출되었습니다. 제2공화국은 내각책임제를 실시하였는데,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은 상징적인 존재이고, 실질적인 국정운영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민의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국무총리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이는 영국에 국왕이 있지만, 국왕은 상징적·의전적 기능을 갖고, 수상이 수반이 되어 실질적으로 대권을 장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던 제1공화국의 폐단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시도였습니다.

    ■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참의원 선거
    대한민국의 참의원제도는 단원제의 폐단을 견제하고자 하는 장치로서 1952년 발췌개헌 이후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헌법에서는 양원제를 규정하고, 헌법 제36조 제2항에 부통령이 참의원의 의장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1954년, 1958년, 1960년 세 번의 선거 중 양원제로 진행된 선거는 1960년에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선거 단 한 번이었습니다. 발췌개헌 자체가 정치적 선진화를 위한 것이 아닌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그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2공화국은 정치적 혼란속에 출범한지 9개월만인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양원제 국회가 다시 부활하지 못하였으므로 처음 열린 참의원의원 선거는 동시에 마지막 선거가 되었으며, 박정희 군사정부 이후로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단원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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