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이야기

  • 선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재·보궐선거

    |23/04/01


  • 우리나라 최초의 재·보궐선거
    재·보궐선거는 재선거와 보궐선거를 합친 말로, 재선거는 선거 자체에 문제가 있어 선거가 무효로 되거나 당선인이 선거범죄로 당선 무효가 되었을 때 실시합니다. 보궐선거는 선출직 공직자가 사망, 사퇴 등으로 빈 자리가 생겼을 때 실시합니다. 한 마디로 재·보궐선거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 교육감의 사망, 사직, 기타 사유로 자리가 비었을 때 실시하는 선거입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보궐선거는 1948년 10월 30일 치러졌습니다. 선거구는 서울 동대문갑구였고, 실시 사유는 당선자인 이승만 의원이 7월 20일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재선거는 1949년 5월 10일 제주도에서 실시되었습니다. 1948년 5·10 총선거 당시 4·3사건으로 투표소가 불타면서 북제주군의 갑·을 두 선거구의 선거가 무효가 되었는데, 1년 만에 그 두 곳에서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졌습니다.

    과거에는 사유가 발생할 때마다 법정 기한 내에 각각 재·보궐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불규칙하게 실시되고 너무 잦아 비용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0년 2월 16일 선거법을 개정하여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 모아서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기로 정례화했습니다. 이후 재·보궐선거는 2015년 다시 개정되어 4월에 한 번만 치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재·보궐선거를 연 1회로 축소하면서 선거 비용이 절감된 대신 궐위에 따른 공백기간이 늘어난다는 부작용이 지적되었습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4월의 재·보궐선거를 놓칠 경우 이듬해까지 단체장이 없는 공백 상태가 지속되어 행정사무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했습니다. 이를 감안하여 2020년 12월 선거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 재·보궐선거의 경우 상·하반기 연 2회로 다시 늘렸습니다.

    중요한 선거제도와 장비의 시험무대
    재·보궐선거는 공직자를 충원하여 업무 공백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선거제도와 장비 등의 도입을 위한 시험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국 단위 선거에 미칠 파급효과와 실효성을 미리 점검해 보는 실전 훈련장으로 재·보궐선거가 활용되었던 것이죠. 이 때문에 선거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먼저 사전투표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던 선거가 바로 2013년 4월 24일 실시한 재·보궐선거였습니다. 당시 서울, 부산, 경기, 충남, 경남, 경북에 산재한 12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기초자치단체장, 지방의원에 대한 재·보궐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이때 선거사상 처음으로 ‘통합선거인명부를 활용한 부재자투표’를 실시하였습니다. 선거일 5일 전 이틀간 통합선거인명부가 비치된 부재자투표소에서 별도의 사전신고 없이 선거인 누구나 투표할 수 있었던 거죠. 이를 위해 전국 79곳에 통합선거인명부를 활용한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되었고, 투표용지 발급기 207대가 보급되었습니다. 이때 사전투표 효과를 확인한 후 이듬해 선거법이 개정되어 사전투표 제도가 확정되었습니다.

    통합선거인명부를 활용한 부재자투표 /strong>
    투표용지발급기가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말했는데요. 현장에서 바로 투표용지를 인쇄해 주는 발급기가 그때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죠. 통합선거인명부와 투표용지발급기가 결합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해당 선거인에 맞는 투표용지를 즉석에서 발급해 투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히 투표의 신기원을 열었습니다. 이런 신형 장비들이 처음 등장하는 무대 또한 재·보궐선거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일례로 요즘 개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사계수기가 처음 활용된 선거도 1993년 8월 12일 실시한 강원도 춘천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였습니다. 이때 사용하기 시작한 계수기를 개량하여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량으로 제작해 보급하면서 개표시간을 단축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2005년 4월 30일 재·보궐선거에서는 만년도장식 기표용구가 처음 선보였습니다.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만년도장식 기표용구는 잉크가 도장에 내장돼 있어 별도 인주 없이도 기표가 가능했습니다. 유권자들의 편의를 증진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인주가 번지거나 고르게 찍히지 않는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선거법 위반행위 단속 시작
    무엇보다 재·보궐선거에서는 우리 선거사에서 획기적인 선거법 위반행위 단속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1989년 동해시와 영등포구을 국회의원 재선거였습니다. ‘타락한 후보자와 유권자의 황금축제’라고 불릴 만큼 혼탁했던 동해시 재선거에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창설 이래 처음으로 선거법 위반행위 단속반을 꾸렸고, 선거사상 처음으로 후보자와 선거사무장 모두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영등포구을 재선거에서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총 70건의 위반행위를 적발했습니다. 동해시와 영등포구을 재선거를 기점으로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한 단속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거법 위반행위를 단속하고 깨끗한 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는 현재 공정선거지원단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정선거지원단의 옛 이름은 선거부정감시단이었습니다. 이 선거부정감시단의 태동 또한 재·보궐선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99년 6월 3일 재·보궐선거에서 혼탁한 선거환경을 정화하고자 여야 후보자는 물론 선거관리위원회와 시민단체가 합심해 부정선거를 감시할 수 있도록 감시단을 두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때 합의한 선거부정 감시 활동은 2000년 2월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선거부정감시단 제도의 신설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밖에도 지금은 보편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정당의 상향식 공천제도가 여야 정치권에 널리 수용된 시기도 2000년 6월 8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서였습니다. 과거 공천은 정당의 상층부에서 낙점하는 하향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공천 관행을 타파하고자 2000년 6월 8일 재·보궐선거에서는 대다수 선거구에서 여야 모두 당원들이 직접 후보자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을 실시하였습니다. 이후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지금까지 당원들만 참여했던 대선후보 경선이 우리나라 선거사상 최초로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국민참여경선으로 치러졌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재·보궐선거
    우리나라에서 재·보궐선거는 정치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인사가 그 뒤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손학규, 이회창, 정동영, 박원순, 안철수 등등 정치계 주요 인사들이 재·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첫발을 들이거나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재·보궐선거가 가진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낮습니다. 낮은 투표율은 선거의 대표성을 위협하고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재·보궐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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