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이야기

  • 토론을 통해 민주주의 발전을 이끄는 선거방송토론위원회

    |23/03/15


  • TV 앞에 선 후보자
    우리나라 선거에서 TV를 이용해 후보자들이 대담하거나 토론하는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1987년이었습니다. 이때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한 제9차 헌법개정 이후 대통령선거법을 새로 제정하면서 “방송시설을 이용한 대담‧토론”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TV를 이용한 대담‧토론은 후보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서로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선거운동 방법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인지 이때까지만 해도 후보자들은 TV 앞에 서기보다 여의도광장의 수백만 인파 앞에 나서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TV 토론은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TV 대담은 ‘뜻하지 않게’ 성사되었습니다.
    1987년 관훈클럽에서 제1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김대중, 김종필, 김영삼, 노태우 네 후보를 한 사람씩 차례로 초청해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는 대담을 개최했습니다. 이 대담은 유권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고 KBS와 MBC에서 주요내용을 편집해 집중 보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방송국이 편집해 방영한 대담 시간이나 장면이 똑같지 않아 편파적이라는 시비가 일었습니다. 논란이 확대되자 방송국은 관훈클럽 초청 대담을 편집 없이 그대로 이틀에 걸쳐 방송에 내보냈습니다. 이 방송이 오히려 국민들의 관심을 많이 끌었습니다. 선거법에 근거한 ‘방송시설을 이용한 대담‧토론’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이 최초의 후보자 초청 TV 대담이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TV 대담‧토론회를 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죠. 이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도 후보자 TV 대담·토론회는 단 한 차례도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공정한 방송토론을 위한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신설
    1994년 제정된 통합선거법에서는 언론기관이 선거운동기간 중 후보자 등을 초청해 대담‧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통령선거뿐만 아니라 다른 선거에서도 대담‧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된 거죠. 1995년 5월 27일 KBS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자 3인을 초청해 TV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선거운동기간 전이어서 토론회가 불가능했지만, 취재형식이라면 가능하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에 따라 ‘특별합동회견’이라는 형식을 띠었습니다. 이 토론회가 우리 선거사상 최초 TV 토론이었습니다.

    제1회 지방선거에서 TV 대담‧토론회가 처음 실시된 만큼 방송사고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구시장선거에 출마한 한 무소속 후보자는 토론회에 자신을 참석시키지 않았다며 선거운동원 수십 명과 함께 대구문화방송국에 난입해 방송국 철문을 부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이 때문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후보자 초청 토론회가 20여 분간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후보자를 초청하고, 주제를 선정해 TV 토론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공정하고 객관적이지 못하다며 편파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후보자들의 출연도 유동적이었습니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운영기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1997년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최초로 설립되었습니다. KBS와 MBC가 공동으로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설치하고 후보자 등을 초청한 대담‧토론회를 의무적으로 3회 이상 개최하게 된 거죠. 1997년 12월 1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합동토론회’는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최초의 후보자 TV 토론이었습니다. 공영방송사에 설치해 한시적인 조직으로 운영되긴 했지만, 이후 2000년 2월에는 대통령선거뿐만 아니라 시·도지사선거에까지 각 선거구별로 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설치하였습니다.

    독립적인 상설기관으로 발전
    TV 토론이 활성화되어 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설치하는 선거의 범위가 확대되고, TV 토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커지면서 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독립기관으로 상설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제17대 국회의원선거를 한 달여 앞둔 2004년 3월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정당연설회와 합동연설회가 폐지됐고, 인터넷과 미디어를 이용한 선거운동 조항들이 신설됐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선거운동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상설화를 논의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에 설치하자는 의견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에 두자는 의견이 대립하였습니다. 하지만 공정한 방송토론을 위해서 중립적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설치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국회의원선거방송토론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선거관리위원회가 더 유리한 장점도 고려했습니다. 그리하여 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중앙, 시·도 및 구·시·군을 포함한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에 상시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3월 15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창설되었습니다. 위원은 국회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한 위원과 공영방송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가 추천한 위원으로 폭넓게 구성되었습니다. 현재 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후보자토론회와 정책토론회를 주관하고, 아울러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토론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토론문화는 민주주의의 발전
    선거방송토론이 도입되면서 여러 가지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수십, 수백만 명을 동원해 물의를 일으켰던 연설회가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후보자와 유권자는 집안의 TV를 통해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운동장 중심의 유세가 미디어 중심으로 변화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죠. 방송토론을 통해 정당, 후보자의 비전과 정책을 더욱 쉽게 비교하고 검증할 수 있게 되면서 유권자의 알권리가 충족되고, 선택 기회를 넓히는 효과도 얻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면 그 꽃이 개화하기 위해서는 토론이 필수적입니다. 토론은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핵심기제입니다. 토론은 경청, 배려, 유연한 사고의 습관을 길러 양보와 타협의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민주시민교육 수단입니다. 또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이기에 정치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민주시민의식을 함양하며, 조화로운 시민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에 대한 토론 교육을 확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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