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보자 선거벽보(1) 제2ㆍ3대 정ㆍ부통령선거 이승만, 이범석 선거벽보

    |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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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헌국회에서 간접선거로 당선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선이 불확실해지자 ‘발췌개헌’을 통해 선거방식을 대통령 직선제로 바꾸었다. 이 개헌안이 통과된 지 한 달 만인 1952년 8월 15일 제2ㆍ3대 정ㆍ부통령선거가 실시되었고 이승만은 재선에 성공했다. 이 달의 선거사료는 제2ㆍ3대 정ㆍ부통령선거에 출마한 자유당 이승만, 이범석의 선거벽보이다.

    [자료 1] 제2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승만 후보자의 선거벽보이다. 크기는 가로 55, 세로 80 cm이고 주로 한자로 표기되어 있으며 세로쓰기이다. 이승만의 사진과 함께 다음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자유당 전국애국사회단체 공천. 대통령후보 이승만 박사. 우리 민족의 최고 영도자이신 이박사를 대통령으로 다같이 투표합시다!!”
    선거벽보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박사’라는 존칭어이다. 이승만의 이름에 가장 흔하게 따라 붙은 존칭어는 ‘박사’(‘이박사’ 혹은 ‘이승만 박사’)였는데, 당시 한국의 대중들이 ‘이승만’하면 떠올린 이미지 중 하나는 ‘미국 박사’였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였고, 일본을 꺾은 나라 미국의 명문 대학 박사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엄청난 후광효과를 안겨 주었다.

    [자료 2] 이범석 후보의 선거벽보 또한 이승만 후보의 선거벽보와 거의 유사한 형식과 문구로 작성되어 있다. 내용은 “자유당 전국애국사회단체 공천. 부통령후보 이범석 선생. 애국애족의 열혈지도자 이범석선생을 부통령으로 다같이 투표합시다!!”라고 적혀 있다.
    이범석은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겸직했고, 1951년 자유당 창당은 물론 내무부 장관으로 부산정치파동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는 전국적 청년단체인 대한청년단 내에서 이른바 족청계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단원이 백만 명을 헤아릴 만큼 강한 조직력을 갖고 있었다. 이범석은 부통령 후보로 자유당에서 공천을 받았지만 선거 결과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함태영이 부통령에 당선됐다. 아무런 조직을 갖고 있지 않았고 대중적인 인지도도 낮았던 함태영이 당선됐던 것은 자유당 부당수 이범석을 견제하고자 했던 이승만의 의중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 참고문헌
    김은식. 「대선의 현대사」. 브레인스토어. 2017.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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