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출범 이후 첫 선거 - 제5대 대통령선거

    |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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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한 첫 선거
    1963년 1월 21일 ‘선거관리의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창설되었고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습니다.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의 창설 덕분에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는 투표와 개표에 의한 선거부정이 눈에 띄게 사라졌는데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에 야당 추천 위원이 참여한 것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선거권은 만 20세 이상 국민에게, 피선거권은 선거일까지 계속해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40세 이상의 국민에게 주어졌습니다. 후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당의 공천이 필요했으며 박정희, 윤보선 등 모두 7명의 후보자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했습니다.

    [자료1] 제5대 대통령선거 홍보 포스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5대 대통령선거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포스터이며 가로 79 * 세로 108 cm 크기의 대형 포스터입니다. 제5대 대통령선거라고 하지 않고 ‘제3공화국 대통령선거’라 표현한 문구가 눈에 띕니다.
    [자료2] 제5대 대통령선거 홍보 포스터로 ‘빠짐없이 투표하여 이룩하자 복지사회!’라는 문구가 적혀 있으며 공명선거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3ㆍ15 부정선거 이후 다시 이루어진 대통령 직접선거이기 때문에 공명선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료3] 제5대 대통령선거 투표안내문. 경상북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작한 것으로 제5대 대통령선거에 대한 의의와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군정과 민정의 대결 - 박정희 vs 윤보선
    5ㆍ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군부정권은 반공과 경제개발, 근대화를 내세우며 대통령 직선제를 복귀시켰습니다. 선거전은 초반부터 ‘혁명과업 완수 대 민정수립’이라는 대결구도 아래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의 양강 대결구도로 전개되었습니다. 박정희 후보는 ‘새 일꾼에 한 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보자’는 구호 아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 수출 진흥, 공명선거 거듭 보장, 정치풍토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이에 맞서 윤보선 후보는 ‘군정으로 병든 나라 민정으로 바로 잡자’는 구호를 내걸고 군의 정치적 중립, 정치간섭 엄금, 법치주의 확립에 의한 신질서 건설 확립, 식량위기 해소, 외자도입 촉진 등을 약속했습니다.

    [자료4] 제5대 대통령선거 윤보선 후보 선거벽보. 벽보의 ‘군정으로 병든 나라, 민정으로 바로잡자’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윤보선은 선거를 군정 대 민정이라는 구도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자료5] 제5대 대통령선거 박정희 당선인의 감사문. 박정희 당선인은 제3공화국의 3대 과업을 ① 정국안정, ② 민생안정, ③ 민심안정이라고 알리고 협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박정희, 윤보선 두 후보의 치열한 각축전이 끝나고 개표 결과에 모든 촉각이 집중되었습니다. 최종 개표 결과 박정희 후보가 46.6% 득표로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박빙의 승부를 펼친 윤보선 후보는 15만 6천여 표 차이로 낙선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사상 가장 근소한 표 차이였습니다.

    ※ 참고문헌
    대한민국역사박물관ㆍ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 2016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50년사」, 2013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 대한민국을 만들다」, 2017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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