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태현 후보의 명함형 소형인쇄물 고무인

    |25/06/25


  • 1950년대는 민주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당시 선거는 오늘날과 비교해 홍보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후보자들은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인 방식으로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렸다. 고무인은 그 대표적인 도구 중 하나로 유인물이나 전단지에 기호와 이름을 찍어 배포하는데 활용되었다. 당시에는 대중매체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고, 후보자가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선거 홍보 수단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도장을 통해 인쇄물을 쉽고 빠르게 제작하여 유권자에게 자신을 홍보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950~60년대 공직 선거에 출마한 권태현 후보가 사용한 고무인이다.
    고무인의 크기는 5㎝×9㎝×7.2㎝(가로×세로×높이)로 한 손에 쥐기 적당한 크기이다. 이 고무인의 손잡이는 나무로 제작되었으며, 실제로 글자가 찍히는 부분은 고무로 제작되었다. 이 두 부분은 네 모서리에 박힌 작은 못으로 고정되어 있어 실용성을 고려한 제작 방식임을 엿볼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도장이 찍히는 부분은 직사각형 테두리 안에 상하로 구분되어 있다. 윗부분에는 후보자의 기호, 아랫부분에는 후보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양각으로 제작되어 있어 선명한 인쇄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와 ‘호’ 글자 사이에 작대기 8개가 새겨져 있는데, 당시에는 기호를 작대기 개수로 표시하였다. 직사각형 테두리의 하단에는 ‘권태현(權台鉉)’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 선거에서 권태현 후보가 8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를 졸업한 권태현 후보는 공직 선거에 3번 출마한 기록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정보공간 →역대선거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52년과 1956년 시·도의회의원선거, 1960년 제5대 민의원의원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1952년 경남도의회의원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의령군 제2선거구에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 이후 1956년 경남도의회의원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하였으나 당선인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1960년 7월 29일 제5대 민의원의원선거에 무소속으로 경남 제17선거구(의령)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고무인의 제작 시점은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다. 다만 권태현 후보의 정치 이력과 출마 경력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도장은 1960년 제5대 민의원의원선거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그가 그 선거에서 기호 8번으로 출마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선 두 차례 선거에서 고무인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기호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찾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의 명함형 소형인쇄물을 살펴보면 권태현 후보 고무인처럼 도장에 잉크를 묻혀 직접 종이에 찍는 방식으로 제작하여 배포했을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도장은 유권자에게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권태현 후보의 고무인은 단순한 도장이 아닌 1950~60년대 선거운동의 한 단면을 생생히 보여주는 실물 자료이다. 전자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리는 방식으로 손수 도장을 제작해 인쇄물에 직접 찍는 방식은 후보자 개인이 선거운동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고 유권자에게 다가갔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자료는 단순한 선거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금처럼 정교한 인쇄기술이나 온라인 홍보 수단이 없던 시절, 나무 손잡이에 고무를 붙여 만든 이 도장은 후보자가 자신을 알리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상징물인 것이다. 이처럼 권태현 후보의 고무인은 당시 정치의 풍경과 유권자와의 소통 방식, 그리고 민주주의 정착 과정 속에서의 개인의 노력을 간직한 역사적 유물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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