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디서든 참정권 보장
|25/02/03
■ 천리길을 한달음에
러시아 남부 흑해 연안의 조지아에 살던 9명의 한인이 2012년 12월 6일 튀르키예 주재 한국대사관을 방문했습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앙카라까지 왕복 2,700km, 2박 3일에 걸친 대장정이었습니다. 천리가 훌쩍 넘는 먼 길을 달려간 이들은 또 있었습니다. 중국 지린성 옌지시에서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 등 3명은 기차로 18시간을 달려 랴오닝성 선양 총영사관을 찾았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힘겨운 발걸음을 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살던 오모씨는 폐암을 무릅쓰고 남편의 도움을 받아 산소통을 휠체어에 단 채 총영사관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왜 힘들고 먼 거리를 달려온 것일까요?
■ 참정권 실현, 그 벅찬 감동
2012년 튀르키예와 중국, 미국 등 세계 각국의 한국 공관을 찾은 한인들은 모두 재외투표를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해 4월과 12월에는 제19대 총선과 제18대 대선이 각각 치러졌습니다. 이 양대선거를 앞두고 재외선거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1972년 국외부재자투표 폐지 이후 37년 만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158개 공관에서 현지시간으로 3월 28일 오전 8시를 기해 일제히 재외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재외선거는 동포사회의 뜨거운 관심과 열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재외선거는 1997년 헌법소원이 제기된 이후 오랫동안 재외국민들의 숙원이었습니다. 런던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던 한 한인은 첫 투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김밥과 곰국을 투표소 관계자들에게 전하며 “40년 만에 내 손으로 치르는 선거라 소중히 생각한다.”라는 소감을 밝혔고, 로스엔젤레스에서도 “40년 전에 한국을 떠나 온 뒤 처음으로 투표를 해보았다. 대통령선거 때도 꼭 투표하겠다.”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2월 5일부터 10일까지 실시된 제18대 대선 재외투표율은 71.2%였습니다. 앞선 제19대 총선 때보다 25.5% 상승했습니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겠다는 재외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강한 투표 참여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해외에서 활약하던 선수들도 재외투표에 참가했습니다. 터키 여자배구 페네르바체에서 뛰던 김연경 선수가 재외투표를 한 뒤 인증샷을 올리는가 하면,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 몸담은 차두리 선수 역시 SNS에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했다”며 팬들에게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습니다.
먼 타국에 있던 재외국민들만 재외선거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내에 있던 재외국민들 역시 크게 기뻐하며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내국인과 같은 투표함에 투표하고, 개표하기에 그 의미가 더했습니다. 재일동포 김모씨는 “선거권을 갖게 되면서 (우리나라)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으며, 또 다른 재일동포는 “투표권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중략)… 민주주의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투표권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세요.”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재외선거는 많은 재외국민들이 그토록 소망하던 참정권을 부여하며 그들의 험난했던 역사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제18대 대선에서는 선상투표가 처음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원양어선이나 외항여객, 화물운송 선박 등에 승선하고 있는 한국 선원들이 대상이었습니다. 선상투표는 투표의 비밀이 보장될 수 있도록 기술적 장치가 된 위성통신 ‘쉴드 팩스’를 이용해 투표하였습니다. 12월 11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제18대 대선의 선상투표는 투표 대상자 7,057명(1,080척) 중 6,617명(1,016척)이 참여하여 투표율 93.8%를 기록했습니다. 투표율이 보여주듯 참여 열기 또한 대단했는데, 부산에서 오사카를 오가는 카페리호에서는 한 선원이 투표를 하자 다른 선원들이 박수를 치는가 하면, 선장은 “그동안 우리 선원들, 승무원들은 선거권이 있어도 투표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항해를 하면서도 투표를 할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합니다.”라는 벅찬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디서든 참정권 보장
재외선거와 선상투표제도를 도입하여 이제 우리는 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재외공관 및 선상에서 대선과 총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세계 어디서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과 애국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과 한층 더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선거, 행복한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에 있든 우리 모두가 함께할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