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이야기

  • 국민참여경선으로 활성화된 상향식 후보 공천(2002)

    |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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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과 권력으로 얼룩진 하향식 공천
    정당의 후보자 선출은 민주선거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물론 후보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정당 공천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3공화국 때는 정당 공천이 필수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소속으로 얼마든지 선거에 출마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당의 지원을 받으면 당선되기 유리합니다. 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수의 후보자가 나오면 표가 분산되기 때문에 공천한 후보자 1명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 당선에 유리합니다. 그렇기에 후보자들은 유력한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당공천이 시작된 시기는 1954년 제3대 민의원의원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에서 후보자를 공천하면서부터입니다. 그전에는 유명무실했죠.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진 정당도 없었을 뿐더러 중앙당의 영향력이 지방에서는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유당의 공천 이후 정당이 체계적으로 조직화되고 지역색이 짙어지면서 당선을 위해 공천은 필수과정이 되었습니다.
    과거 공천은 정당의 최고지도자나 소수 지도자 그룹이 낙점하는 하향식이었습니다. 특히 1987년 이후 지역주의 투표성향이 강해지면서 일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과 그 지도자의 영향력은 막강했습니다. ‘공천이 곧 당선’이던 때였습니다. 정당 지도자들은 공천권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고 정치자금을 확보했습니다. 계파간 줄 세우기나 특별 당비라는 명목으로 돈 공천이 자행되었습니다.
    대가성 공천 등 부정적 관행이 적지 않게 발생하며 공천제도가 돈과 권력으로 더럽혀지고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했습니다. “우리 정치권 고민의 90%가 잘못된 공천에서 나온 것”이라는 발언이 나올 정도로 공천제도에 대한 불신은 쌓여갔습니다.

    ■ 상향식 국민참여경선의 도입
    공천제도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었습니다. 국민들은 후보자 공천과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공천시스템 개혁과 당내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2000년 6월 8일 재ㆍ보궐선거에서는 대다수 선거구에서 여야 모두 당원들이 직접 후보자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이 시도되었습니다. 특히 새천년민주당 도봉구을지구당에서는 지역구 당원 전체를 대상으로 후보자 선출 투표를 실시하여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당원들만 참여했던 대선후보 경선을 우리나라 선거사상 최초로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국민참여경선으로 치르기로 했습니다.
    새천년민주당은 대의원 1만5천 명, 일반당원 2만 명, 국민선거인단 3만5천 명 등 전체 7만 명으로 투표인단을 구성하고, 전국 16개 시ㆍ도를 순회하는 지역별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습니다. 한나라당 역시 당원 2만5천 명과 일반국민 2만5천 명 등 5만 명의 선거인단을 대상으로 전국 11개 권역을 순회하며 국민경선을 치렀습니다. 경선 토론회와 연설회가 매스컴은 물론 당시 확산되기 시작한 초고속인터넷을 타고 전국으로 전달됐습니다.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20~40대 젊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흥미를 느끼고 참여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곧이어 제3회 지방선거에서도 상향식 공천이 계속되었습니다. 새천년민주당은 155명의 자치구ㆍ시ㆍ군의 장 선거 후보 가운데 48.4%인 75명을 당내 경선으로 뽑았고, 한나라당 역시 1/3에 육박하는 후보자가 당내 경선을 거쳤습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주요 정당에서 일찌감치 국민참여형 상향식 경선을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비록 현실은 의지만큼 따라주지 못했지만, 투표뿐만 아니라 여론조사를 병행하면서 일반 국민들의 참여율을 더 높였습니다.

    ■ 국민들에게 열린 새로운 정치참여의 길
    국민참여경선은 미국의 대통령 후보 선출과정에서 개방을 통한 참여와 대표성을 제고하자는 취지로 20세기 초에 태동하여 1972년 정착된 예비선거제도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를 참고해 2002년 국민참여경선제를 고안했지만, 우리 정당 관계자들의 인식과 이해관계, 비전 등이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단적인 예로 미국식 예비선거는 모든 유권자들에게 투표권을 주었지만 우리나라 국민참여경선제는 제한적으로 투표권을 부여했습니다.
    우리 정치상황에 맞게 재해석된 상향식 공천이 정치권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싹을 틔웠습니다. 물론 이상과 현실 사이에 많은 괴리가 있습니다. 국민참여형 공천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경선이 과열되면 불필요한 정쟁을 낳을 우려가 있습니다. 또 후보자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할 경우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후보자의 철학이나 국정 운영 능력보다는 인지도가 높은 인기 후보자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은 거죠. 상대편 당원들의 조직적인 역선택 문제는 골칫거리입니다.
    그럼에도 상향식 공천은 오랜 세월 고착화된 폐쇄적인 공천 관행에서 벗어나 정당 민주화와 참여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과거처럼 극소수 정치인의 밀실거래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자가 결정되기에 민주주의 역사에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글쓴이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관 김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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