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이야기

  •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의 개막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5.6.27)

    |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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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선거의 시점과 임기 단축
    30여 년 만인 1991년 지방의회의원선거가 다시 실시되면서 지방선거가 부활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치르기로 되어 있던 지방자치단체장선거가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이유로 연기되면서 지방자치는 반쪽에 머물렀습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미온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미룰 수만도 없었습니다. 1995년 지방의회의원선거가 도래할 예정이었으니까요. 중론은 지방의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4개를 동시에 치르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었습니다. 각각 따로 선거를 치러 임기를 다르게 하면 지방행정의 안정성과 계속성을 해치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질 소지가 컸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지방선거 4개가 다른 선거와 겹치게 될 확률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지방선거, 국회의원선거, 대통령선거를 같은 해에 몰아서 치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해결책은 4년마다 시행되는 지방선거를 같은 주기로 실시되는 국회의원선거의 중간 시점에 넣어 서로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방의회의원선거가 예정된 1995년은 제14대 국회의 임기 중간이 아니었습니다. 기존 지방의회의원의 임기를 1년 줄여 1994년 지방선거를 치르거나 1995년 선출된 지방의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를 1년 줄여 선거 시점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야는 1년6개월의 기나긴 협상 끝에 1994년 3월 16일 「지방자치법」을 개정하며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1995년 6월 30일 이내에 실시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울러 이때 선출될 지방의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에 한해 임기를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였습니다.

    ■ 4개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는 선거환경

    이번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시·도지사선거, 자치구·시·군의 장 선거, 시·도의회의원선거,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 4개를 동시에 치르는 사상 초유의 선거였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폭발적인 업무량 증가에 대비해 1994년 1월부터 10월까지 공명선거기획단을 편성하고 각종 규칙이나 선거업무의 표준화와 간소화, 선거 장비에 대한 개선방안을 연구했습니다.
    4개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므로 유권자의 혼란을 막기 위해 지방의회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구분해 두 번에 나누어 투표용지를 교부했고, 투표용지 색상도 각 선거별로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투표함 또한 처음으로 특수골판지를 사용해 투표용지와 동일한 색상으로 각각 제작했습니다. 달라진 투·개표 상황을 유권자들이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에 모의투표소와 전시장을 설치하였습니다.
    1995년 3월에는 한성대학교 체육관에서 개표시연회를 개최했는데, 개표 시간을 측정해 보니 부재자투표 개표에 5시간, 일반투표 개표는 13시간 30분이 걸리는 등 개표를 종료하기까지 총 23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서둘러 문제해결에 나서서 개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투표지계수기가 도입되었고, 금융기관 직원들이 개표사무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한 결과 선거관리는 큰 사고 없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희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1994년 통합선거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였습니다. 통합선거법으로 선거운동의 자유가 확대되어 금지된 사람이 아니면 누구든지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고, 공개 장소에서 연설·대담이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비닐벽보판을 사용해 선전벽보를 붙였습니다. 후보자선전물에 적힌 학력, 경력 등에 허위사실을 발견한 경우 누구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대학원의 단기연수 과정을 정규과정을 수료한 것처럼 학력을 과장한 내용이었습니다. 더불어 유권자에게 우편으로 전달하는 투표안내문을 처음 도입했는데, 선거공보와 책자형 소형인쇄물을 1차로 발송하고, 3일 정도 시차를 둔 후 전단형 소형인쇄물을 발송했습니다. 선거일에 투표소까지 가기 어려운 외딴 섬에 거주하는 유권자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순회투표제도도 도입되었습니다.

    ■ 신(新) 3김 시대의 등장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2년 만에 실시된 전국 단위 지방선거는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두 거인이 화려하게 복귀를 준비하며 치열한 격전을 예고하였습니다.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은 소위 지역등권론을 주장하며 호남지역에서 세력을 규합하였습니다. 또 김종필 대표는 민주자유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고 의원내각제 개헌을 강령으로 채택하며 충청권에서 힘을 모았습니다. 서서히 ‘신 3김 시대’가 형성돼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6월 11일부터 이틀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 후보자등록 결과 시·도지사선거 56명 등 모두 15,596명이 등록해 평균 2.7 대 1의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그중에서 선거 결과 시·도지사 15명 등 총 5,756명의 당선인이 배출되었습니다.

    ■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의 개막
    이번 선거는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34년 만에 제도적으로 완전히 부활된 선거로 진정한 의미에서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출로 지방권력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전준비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4개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면서 적지 않은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습니다. 유권자들은 후보자 수가 많아 후보자를 비교·분석하고 선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사회적 관심이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에 편중되어 지방의회의원선거 후보자에 대한 관심과 검증이 상대적으로 소홀하기도 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 후보자들을 사전에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후보자 정보 공개를 더욱 활성화해 유권자의 비교·선택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부각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정당의 지방선거 관여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는데, 선거기간 중에는 좀 더 포괄적인 정당활동 제한이 필요하며, 정당의 지방분권화가 제도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정당 스스로도 정당 공천 기준을 강화해 전문적이며 책임 있는 인물이 후보자로 공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습니다.

    <글쓴이 : 천안시북구선거관리위원회 지도담당관 김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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