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이야기

  • 계수기의 화려한 변신

    |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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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개표 물량 폭증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되었습니다. 선거사상 처음으로 시ㆍ도지사, 구청장ㆍ시장ㆍ군수, 시ㆍ도의회의원, 구ㆍ시ㆍ군의회의원을 뽑는 4개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질 예정이었습니다. 4개 선거를 동시에 치른다니 투표용지도 4종류, 투표함도 4종류가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처리해야 할 투표지 물량도 기존 선거의 4배 가까이 될 것입니다.
    4배로 폭증한 투표지를 일일이 사람 손으로 세다 보면 시간도 4배나 더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4개 선거의 투표지를 수작업만으로 일일이 분류하고 확인해 100매 단위로 일정하게 구분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개표는 선거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정확한 것은 물론이고 신속하게 당선자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선거관리위원회는 기계의 도움을 빌리기로 합니다. 바로 계수기라는 은행에서 돈 셀 때 쓰는 기계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죠.

    ■ 선거에 적합한 투표지계수기 개발
    제1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는 1994년 6월 투표 및 개표 장비 개발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투표용지를 검수하고 배부할 때 그리고 선거별, 유ㆍ무효별, 후보자별로 분류된 투표지가 몇 매인지 계산하는 데 사용할 투표지계수기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먼저 투표용지의 폭인 10㎝는 일정해도 길이는 최소 13㎝에서 최대 34㎝까지 모두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기계의 부피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았습니다. 한 개의 개표상을 기준으로 3대의 계수기를 배치할 계획이었기에 부피가 너무 크면 곤란했기 때문입니다. 또 운반·보관이 쉽도록 무게도 적게 나가야 했습니다.
    이와 함께 연속해서 계수하기와 100매 단위로 일정하게 계수되는 기능이 있어야 했습니다. 연속으로 투표지가 기계에 들어가는 연속 급지가 가능해야 했는데, 특히 구겨진 투표지가 원활하게 급지되어야 했습니다. 더불어 계수 누락이나 이중 급지가 되지 않도록 방지기능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또 계수 속도는 100매를 10초 내에 할 수 있어야 하며, 자동·수동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계수기가 필요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장비 개발 업체를 조사하여 모두 6개 업체를 개발 참여 희망업체로 선정하였습니다. 당시 전국 308개 투표구에 4,014대와 예비용 308대를 더해 모두 4,322대를 제작하기로 계획했습니다. 1994년 모형품 제작기간을 최대한 단축하여 그해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시범적으로 사용해 보았습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추가로 더 제작하여 제1회 지방선거에서는 모두 5,029대의 투표지계수기를 사용했습니다.
    개표라는 업무가 기본적으로 일정한 규격의 종이를 같은 것끼리 구분하고 이를 세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를 정확하면서도 신속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제1회 지방선거에서는 이와 비슷한 작업에 숙달되어 있고 계수기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금융기관 직원들을 개표사무원으로 위촉하였습니다. 그 결과 개표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고 그 효율성이 입증되자 이후 각종 선거에서 투표지계수기를 꾸준히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 심사계수기로 진화
    1995년 처음 사용할 당시 투표지계수기의 용도는 분류된 투표지를 100매 단위로 신속하게 세어 정리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2년 투표지분류기가 도입되면서 계수기는 단순히 숫자를 세는 것 이상의 역할을 요구받게 됩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부터 ‘심사계수기’로 활용하게 된 것이죠. 투표지분류기나 수작업을 통해 분류된 투표지를 계수기를 통해 눈으로 재차 심사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계수기의 처리속도를 대폭 줄여서 분류된 모든 투표지를 개표사무원뿐만 아니라 참관인들도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 때는 처리속도를 분당 150∼300매로 제한하였고,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분당 150매로 더 낮추었습니다. 또 심사계수기마다 개표사무원을 2인 1조로 편성하여 심사에 철저를 기하였습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선거환경에서 더 이상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거 결과를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TV와 인터넷으로 실시간 알 수 있게 된 것도 다 투표지분류기나 심사계수기 등 개표보조장치 덕분입니다. 그 어떤 첨단 기계를 사용한다 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참여하는 국민들의 아름다운 선거를 향한 의지와 관심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글쓴이: 화성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주임 박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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